본문 바로가기

나는 그냥 엄마다.

보물 일기.


아이들을 위해 써둔 일기장이 있다. 내 일기가 아니라 아이들의 일기이다. 아이들 대신 내가 써둔 일기장.

보물 일기

 

 

 어렸을 때 일이 궁금해 지는 건 아이를 낳고 나서인 것 같다. 어릴 때 잠 안 자던 둘째를 보며 뒤집지 않고 잘 기어다니지 않던 셋째를 보며 누굴 닮았나. 내가 그랬나. 이런 것들은 애를 낳고 나서야 궁금한 것들이다. 그런데 그 나이가 되어 엄마에게 물어보면 잘 기억하지 못하신다. 그리고 만약. 아이들이 물어보고 싶을 때 내가 없다면 영원한 비밀이 되어버릴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나만이 아닌 건 택이 아빠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응답하라 1988에서 택이가 큰 대회에서 우승하며 택이 아빠가 인터뷰를 하게 되는데 기자가 태몽이며 태어난 시를 물어본다. 아무대답도 못하는 아빠는 엄마가 없는 아들에게 미안해한다.


큰 애를 낳은 2006년 부터 삶의 중요한 분기점들을 꼭 써두려고 했다. 지금 이 일기들은 누구보다 나에게 소중하다. 가끔 앞에서 부터 다시 읽어보면 그 때의 마음들이 생생해진다. 기저귀를 뗀 아이를 보며 기특해하던. 처음 유치원에 보내놓고 아이를 기다리며 썼던 마음이 살아나 아이들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둘째는 유난히도 말이 느렸다. 일기를 찾아보니 57개월에야 문장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써있다. 그 기록이 지금은 큰 위로가 되어준다. 32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엄마'밖에 못하는 막내딸 때문에 마음이 내려앉을때 나를 위로해준다. 말이 느린 아이를 처음 키우는 것도 아닌데 나이 많아 낳은 아이라고 걱정을 사서 할 때도 있다. 둘째때와는 다른건 남편도 같이 걱정을 해준다는 점이다. 그게 또 위로가 된다.


어린시절을 선명한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남겨주기 위한 일기였지만 그 기록들이 육아에 지쳐 부옇게 된 안경을 닦아 사랑스런 아이들을 다시 보게 해 주기도 하고 지나친 염려가 들러 붙으려 할 때 선을 그어주기도 하는 나의 육아동반자가 되어준다. 큰 지진 이후 항상 준비해 놓는 가방안에 이 일기가 들어가있다. 아이들과 나의 삶을 엮는 보물이기에.

'나는 그냥 엄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둘째라서 힘들지.  (0) 2020.05.29
일상의 밥.  (0) 2020.05.12
나는 그냥 엄마다.  (0) 2020.04.24
불안 일기  (0) 2020.04.21
나는 괜찮아.  (2) 2020.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