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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엄마다.

혼자만의 전쟁


둘째는 여느날 처럼 짜증을 내며 일어났고 골라준 긴소매 옷을 보더니 “이걸 입으라고요?” 했다. 반팔을 입고 팔을 감싸고 앉아있길래 추우면 잠바입으라 했더니 오만상을 지으며 건네주는 잠바를 받아 입었다. 나가려고 하는 아이의 뒷머리가 너무 엉클어져 있어 머리를 빗겨주니 짜증으로 온 몸을 떨며 나갔다.

막내 일어나기 전에 강의를 들으려고 모니터를 켰다. 강의가 슬플리 없는데 눈물이 흘러내렸다. 형보다 3년은 빠르게 2차 성징이 시작된 둘째는 5학년에 완연한 사춘기아들이다. 대부분의 대답은 “몰라요”, “상관 없어요”다. 손을 잡으면 빼고 가까이 붙어 걸으려 하면 두 걸음 떨어진다. 큰 아이의 사춘기는 둘째의 사춘기를  대비 하는 백신이 되기에는 너무 약했나 보다. 무방비 상태로 서운하고 서럽다. 막내 태어나기 전까지 7년을 막내로 있던 둘째다.

몸과 마음이 상한 유산후에 간절히 기다렸던 아이였다. 태어날 때 아빠가 옆에 못 있었는데 백일 전에 입원까지 했던 둘째다. 멀리튕겨져 나가는 아들을 보며 눌려지던 마음이 서운함으로 폭팔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한 마디도 걸지 않았다. 아무 대화 없이 각자 일을 했다. 저녁 여덟시 반이 까지도 한 번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나는 침대 위에 무너져 이불을 덮고 울었다.

다음날 아침 큰 마음을 먹고 일어나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 남편은 위로의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점심을 사 주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남편이 삼촌네 데려다 주었다. 다음날이 휴일이라 유일한 친구인 조카랑 하루밤 자고 오라고 말이다. 아이를 보고 있으면 답답하고 아이가 없으면 허전하다. 허전함이 만든 공간에서 아이를 참아주지 못하는 엄마라는 죄책감과 그것 밖에 안되냐는 수치심을 잠시 멈출 수 있었다.

삼촌네서 놀고 온 아들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잘 다녀왔냐 물으며 마음이 무겁지 않았다. 아이들이 내 손 닿는 곳에 있음을 감사하는 시간이 다시 돌아왔다. 상대방은 전혀 모르고 관심도 없는 전쟁을 치루었다. 아이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말하지 않는 아이가 더 깊이 숨어버릴까봐 무서웠다. 눈에 보이지만 눈을 마주 볼 수 없는 사이가 될까 두려웠다. 혼자만의 전쟁이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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