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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엄마다.

아픈 손가락


100일을 앞두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크려면 그럴 수 있다 해도 그러기엔 열이 높고 아기가 너무 어려 병원에 갔다. 밤에 열이 많이 나면 연락하라며 전화번호를 준 의사에게 전화할 수 밖에 없을 만큼 열이 많이 났다. 밤새 못자고 있는 딸이 안타까워 잠깐이라도 눈 붙이라며 아기를 봐주시던 부모님께 고열이 나는 애를 이렇게 돌돌 말아 안고 있으면 어쩌냐고 화를 냈다. 그 밤에 응급실로 달려가지 않고 아침에 병원에 데려오라는 의사의 말을 따랐던 나에게 지금도 화가난다.

병원에선 이것저것 검사를 하더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밤을 같이 새서 피곤하신 아빠랑 다시 큰 병원으로 달렸다. 아기가 어리니 일단 입원하자고 하자는데 오늘은 1박에 30만원이 넘는 특실 하나만이 남아있단다. 다른 병원으로 달리자니 아기가 쳐진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일단 입원하기로 하고 특실로 올라갔다. 아빠는 일하시러 가시고 혼자 아기를 환자복으로 갈아입혔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특실 하얀 병원 침대위에 100일도 안된 아가를 눕혀 놓으니 이제 되었다는 마음이었는지 그제야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 아이가 여기서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태어나서 아빠 얼굴 한 번 못 보고 가는 건데...바다 건너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그 때는 목소리에 큰 변화가 없던 남편이 10년 쯤 지나 공부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가야하나 고민했다는 말을 들었다.

폐렴도 중이염도 약간 있지만 이 정도 고열이 날 만큼 심하지 않다는 게 의사의 소견이었다. 오늘 저녁까지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뇌수막염을 의심해 척수검사를 하겠단다. 두려움으로 혼미해지고 있는 나를 깨워 아기를 돌봐야 했다. 항생제 주사를 맞고 링겔을 꼽고 있는 아가의 이마와 발을 병실 안에 있는 화장실에서 물수건을 적셔 닦아주었다. 물을 많이 마시게 하면서 기저귀도 계속 갈아주었다.

드디어 시간이 되고 체온을 측정했다. 38.1도. 열이 있는 것이었다. 간호사 선생님을 붙잡고 하소연을 시작했다. 아이를 위해서는 그게 쉬워지는 내가 신기하기도 했다. "저희 아이가 열이 있으면 뇌수막염 검사를 해야 하거든요. 정말 죄송한데 조금 있다가 다시 한 번만 재 주시면 안될까요?"

상냥한 선생님은 웃으시며 나의 간절함에 공감해 주셨다. "그럼 어머니 제가 30분 후에 다시 올께요."하고 가셨다. 그 30분 나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약속대로 선생님은 다시 오셨고 "37.8도네요. 어머니. 마음 고생 많으셨죠."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사람이 사람을 위해 해 주는 공감과 배려를 기대하지 않아서였는지 감동은 더 깊었다.

감사하게도 건강이 회복되어 퇴원했지만 이후 6개월 동안 이삼일에 한 번 씩 병원에 다녀오는 게 일상이 되었다. 다시 한 번 다음 주까지 이런 상태이면 수술을 해야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회복되었고 그 후 중이염으로 병원에 가는 일은 없었다.



12살 다 큰 아이가 수족구 비슷한 것에 걸렸다. 자기보다 어린 5살 동생은 아직 괜찮은데..
마음이 짠하다. 아픈 손가락. 오래되어 구수한 표현인만큼 지금을 설명하기에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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