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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 깊은 수다

기꺼이 십 리를 동행하기


#1
햇빛이 쨍쨍한 더운 여름날 친구랑 집이 같은 방향이라 같이 가고 있었다. 우리 집 앞을 지나가면서도 그 친구의 집까지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2
친구랑 같은 역에 내려서 친구가 집으로 가고 나서 마을버스를 타고 집에 온다.

#3
"같이 가자." 는 말에 따라가 다른 일을 하는 친구옆에서 3시간을 보내고 집에 온다.

#4
"우리 집에 가자~" 는 말에 따라가다가 중간에 전화받고 "나 약속 생겼어. " 라는 말에 집으로 돌아온다.


나를 돌아보는 중에 생각난 몇 가지 사건들을 아들과 나누었더니 "엄마 완전 호구였네"한다.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마5:41)'

5학년 때(#1) 교회끝나고 학교에서는 나를 모르는 척하는 친구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오며 많이 속상했던 날이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악몽으로 부터 지켜주시기를 바라며 한 장씩 읽던 성경에서 저 글귀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억지로'의 느낌을 받고도 거절하지 못해 속상한 감정에 대해 자책도 있었는데 위로의 말을 들은 것 같았다. 이후에도 친구들을 많이 데려다주는 쪽이었다. 자연스레 친구들 집에도 많이 가게 되었고 그런 친구와 더 가까워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말씀을 기억해내야 마음이 풀렸던 위의 적은 상황들에서는 아들 말대로 호구였다. 전에는 그들을 맘속으로 탓하는 것으로 끝났으나 결국 그 상황에 나를 내버려 둔 것은 나였다.

의아하다는 눈빛에도 흔들리는 나는 관계는 영원히 유지되어야 한다는 신념아래 내 욕구를 외면한다. 상대의 요구를 응하는 것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말씀은 여전히 유효하다. 불안과 두려움이 동기가 되지 않는 '자발적 헌신'을 향한 의식적 성찰과 기도의 길을 독려하는 말씀이다. 내 안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며 함께 걷는 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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