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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 깊은 수다

충분히



'그 역시 삶의 비극성에 대한 감각으로 뜨인 눈이다. 고통과 비극은 인간 실존의 기본 설정- 그 극한은 죽음이다-이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끈은 고통이다. 'p233 <슬픔을 쓰는 일, 정신실, IVP>


삶의 비극성에 눈이 뜨인 그 날.

집에 가는 길이었다. 학교는 아파트 단지 안에 있었고 수업이 끝난 아이들을 학원에 태워다 주려 엄마들이 타고 온 차들이 서 있는 길은 신차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그 사이를 지나 버스 정류장을 향해 가는 길이었다. 아파트 상가를 지나야 했는데 바로 그 앞에 한 할머니가 앉아계셨다. 도라지며 직접뜯은 듯한 산나물들을 담은 비닐봉지 네 다섯개를 앞에 두고 몸을 살짝 돌려 앉아계셨다. 동네 시장에서는 늘 뵙던 할머니들인데 그곳에서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삶은 고구마 두 개를 싼 비닐봉지를 손에 쥐고 몸을 살짝 숙여 목이 메이지 않게 조심히 한 입 한 입 드시고 계셨다. 할머니와 눈이 마주친 것도 아닌데 황급히 지나쳤다.

작은 가게들이지만 수입 제품을 주로 취급하는 상가는 백화점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 길을 지나는데 목이 따끔거렸다. 울컥 눈물이 나오려 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서서 남몰래 울어버렸다.

공부도 못하고 부자도 아닌 내가 갑자기 불안해졌다. 친구집은 이층짜리 복층 아파트였다. 유리 Jar안에 간식들은 전부 미제였다. '상대적 빈곤감'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박혔다.

힘들어하는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학교를 다녔다. 친구들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몇 동에 사는지를 묻고 동수를 말하면 알겠다는 끄덕임을 이미 삼년 아니 육년 먼저 경험한 아이들이었다. 2등도 행복하지 않은 세상에서 행복을 인정받을 수 있는 아이는 한 명 뿐이다.

이 세상에서 나와 할머니는 같았다. 힘 없고 가진 것 없는. 만약 큰 사고나 병을 만난다면 병원비를 낼 수 없겠지. 사람의 생명의 가치는 돈을 지불할 능력과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였다는 것이 깨달아졌다. 할머니를 지나치며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 딛었다. 냉정한 현실이라는 세상. 충분히 강하지 않은 나.

그러고도 공부를 하지 않았다. 더 큰 고통과 비극을 상상했다. 죽음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아무에게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밝은 엄마와 성실한 아빠의 기대로, 일주일에 서너 번 찬양인도를 빌미로 흘려보내던 눈물로 일상은 유지했다.

고3때 담임은 수학 선생님이셨다. 첫 시간에 교탁에서 반 전체를 둘러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 여기에서 15명 만 대학간다. 나머지는 다 들러리야. 들러리로 살고 싶은 사람은 수업시간에 떠들지 말고 자. "

첫 인상보다는 따뜻한 분이셔서 15명에 끼지 못할 내가 집에서 혼자 고민하고 있을 때 뭐하고 있냐고 빨리 00여대 원서 내라고 전화도 해주셨다. 안타깝게 그 곳은 떨어졌지만.

"오늘도 모든 식구들이 집에서 잠자리에 들게 해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백일도 안 되었던 둘째의 입원과 첫째의 수술로 병원에서 밤을 지새우던 날이 생생하다. 지진으로 흔들리던 집을 떠나 공터에서 텐트치고 자던 날이 어제 같다. 그리하여 나는 집에서 잠드는 오늘이 온 맘 다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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