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집을 나설 때.




집을 나가기 전에 뒤를 돌아보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바닥에는 막내 장난감이 돌아다니고 책상 위에는 아이들 책이며 공책이 잔뜩 쌓여있다. 바닥에 떨어져있는 애들 옷은 주워 올리고 걸어도 다시 그 자리에 놓여져 있다.


애들 한테 열심히 잔소리하는 엄마도 아니고 그렇다고 혼자 부지런히 치우는 엄마도 아니라 다섯이 함께 사는 우리집은 아마도 늘 이 정도 수준일 것이다. 나처럼 말씀하시는 분이 있어도 막상 집에 가보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집이 깨끗하다는 기준이 높으신 분들이다.


나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우리 집은 뭔가를 놓아둘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빠짐없이 뭐든 놓여져있다. 잠깐 치워두면 또 다른 무엇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지난주에 이곳에서 ㅅㅇ하시던 ㅅㄱㅅ님께서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셨다. ㅅㅇㅈ를 가시는 중에 앞에 교통 사고가 나있는 상황을 피하시다 오토바이 뒤에 타신 아내분께서 떨어지셨는데 사고 중에 헬멧이 벗겨지셨고 뇌수술을 했지만 뇌사판정을 받으시고 오늘 심정지로 소천하셨다.


운전대를 잡고 있었던 그 마음, 아내와 함께 집을 나왔는데 혼자 집에 들어가셔야 하는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황망한 소식에도 올 수 없는 (공항봉쇄로 입국이 어려움) 자녀들의 마음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집을 나서며 바라보는 거실의 모습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나친 불안일까. 철저한 준비가 되는 것일까. 거실의 모습을 깨끗하게 바꿔가야 할까. 그게 가장 이상적이긴 하지만 불가능하다면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족해야 할까.


예전에 어떤 ㅅㄱㅅ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던것이 기억난다. 그분도 갑작스런 자동차 사고를 당하셨는데 그 순간 번뜩 자기 집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하셨다. 다시 집에 돌아가게 된다면 다른 사람이 유품을 정리하게 되더라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했다.


내 눈 앞에서 뒤에 탄 큰 아이가 폴짝 뛰어내린 후 남편이 오토바이와 함께 미끄러지는 것을 본 일, 맞은편에서 오던 오토바이랑 부딪쳐 넘어져서 흙투성이가 되어 들어오던 남편, 공사장 철사에 운전하던 남편의 다리가 걸려 오토바이와 같이 넘어지던 일 등이 눈에 선하다.


그러고보니. 절대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시고 집을 나서셨던 분의 집에서 유품을 정리했었다. 그 경험이 내 삶에 분명한 영향을 끼쳤는데도 우리 집 거실이 영 정돈되지 않는 걸 보면 나에게 주어진 이 적은 에너지를 아이들을 한번이라도 더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 쓰는 엄마가 되어야 하나보다. 그런 엄마로 기억되어야 할 일이다.





며칠 전 처음 알게 된 성함이지만 ㅅㄱㅅ님의 눈물과 땀이 이 땅의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기억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저도 기억하겠습니다.